회원소개

열정과 화합으로 함께하는 동대구

마더JC

대구JC

  • 일반현황

    • 창 립 일 : 1964년 5월 15일
    • 인준번호 : 009번
    • 회원 : 88명
    • 특우회원 : 161명
    • 부인회원 : 43명
    • 자매JC : 일본야오JC, 베트남 센트럴사이공JC
    • 우호JC : 전주JC, 제주JC
  • 역대회장단 및
    감사

    1964년 서울 워커힐에서 국제청년조직인 JCI 아세아 지역대회가 개최되어한국을 비롯한 일본, 중국, 필리핀, 오키나와, 싱가포르 등 많은 나라 청년대표들이 모여 JC깃발과 “새 역사 창조는 JC의 힘으로” 라는 구호아래 성대한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평소 참다운 청년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노만균 회우가 대구지역의 대표자격으로 한국청년회의소의 초청을 받아 아세아 컨퍼런스에 참가하여 JC에 대한 깊은 인상을 받고 JC를 연구 검토하게 되었다.
    당시 노만균 회우께서는 JC란 비정치, 비종교단체로서 청년경제인들의 미래를 향한 이상적 조직체란 것을 깊이 인식하여 대구로 돌아왔다. 대구사회에도 순수청년단체의 조직이 필요함을 느끼고 대구의 조직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때까지 한국에 있어서 JC운동은 搖藍期에 머물러 있었으며 1964년 4월 6일의 아세아 컨퍼런스가 한국JC의 새로운 추진력에 불을 붙여 놓는 결과가 되었다고 하겠다. 평택, 부산, 수원, 인천, 서울, 광주, 용인, 전주에 이어 9번째로 대구 청년회의소가 5월 15일 동대구 로타리클럽 회관에서 43명의 회원으로 창립을 보기에 이르렀다. 이 뜻깊은 탄생을 보기 위해 노만균, 최종현,서정우, 강면구, 이승학, 이근준, 이기현 등의 뭉쳐진 노력은 시로 대구JC의 초석이 되었다.

    노만균 초대회장은 창립사에서 “해방후 이나라에는 무수히 많은 청년 단체들이 구호만 높이 들고 구름떼처럼 모였다 헤어졌다는 하는 것을 보아왔다. 과연이들 전부가 진실한 청년운동이었던가? 정치적 목적으로 또는 뿌리가 없는 일시적인 어용단체였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오늘 복된 우리세대에 진정 정착할 수 있는 국제 청년기구인 JC를 맞이하게 되어 청년운동의 새로운 시발점을 찾게 되었으며 사회와 국가가 요구하는 새 시대의 기수로서 대구JC가 탄생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였다.

    또한 이 자리에서 한국JC 중앙회장이었던 황우겸씨는 “한국에 있어서 JC운동은 실질적으로 지금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대구JC의 창립에 커다란 기대와 축복을 드린다. 또한 대구JC는 한국JC운동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 줄 것을 확신한다”고 갈파했다.

    이날 보람의 대열에 참여하는 창립회원과 경상북도 교육감 김판영 등 많은 내빈은 희망찬 출범에 이 지역사회를 위한 커다란 기대를 걸어봄직 하다는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6월 21일 온양에서 개최된 한국 JC 중앙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가입인준을 받고 7월 15일 대구청년회의소는 중앙회장으로부터 가입인주서와 회기, 의사봉을 받아 새 역사 창조에 새로운 장을 장식하였다. 이로부터 43명의 창립 멤버들은 일치단결하여 대구JC의 미래의 초석이 될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하나 하나 처리해 갈 신뢰받는 젊음의 영광 된 행진이 그 막을 열게 된 것이다.